– 참는다고, 사라지는 감정은 없어요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참아야 어른이지.”
“화를 내면 진 사람이야.”
“네 감정은 네가 잘 다스려야지.”
그래서 우리는 참는 법을 배웠습니다.
속상해도 웃는 얼굴,
두려워도 괜찮은 척,
마음이 뒤죽박죽이어도 “별일 아냐”라고 말하는 법을요.
그렇게 감정을 눌러 담은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면 피곤한 건 몸뿐 아니라 머리도 똑같았죠.
뇌는 우리가 억눌러둔 감정을 기억해요
감정은 표현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뇌의 편도체(Amygdala)에 저장돼
늘 경계하고 반응하게 만들어요.
특히 ‘분노’, ‘슬픔’, ‘공포’처럼 부정적 감정을 자주 억누르면
편도체는 과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늘어나요.
그 결과, 우리는 늘 조금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피로하거나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감정을 참는 뇌는 ‘기억력’과 ‘판단력’도 잃어가요
감정 억눌림은 단지 기분 문제로 끝나지 않아요.
코르티솔이 자주 과도하게 분비되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가 위축되고
감정과 사고를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도 약해져요.
그래서 종종 이런 일이 생기죠:
- “왜 이렇게 건망증이 심해졌지?”
- “별 일 아닌데도 너무 피곤해…”
- “나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울컥할까…”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너무 오래, 혼자서 감당했기 때문일 수 있어요.
감정을 말할 수 있어야 뇌는 쉬어요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거나,
감정을 쏟아붓는 일이 아니에요.
그저
“지금 나는 이런 기분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예요.
그 한마디가
편도체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전두엽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이건 위험한 일이 아니야. 느끼고 흘려보내면 되는 거야.”
그때부터 뇌는 조금씩 여유를 되찾고,
몸도 마음도 휴식할 준비를 해요.
말하지 않은 감정은 몸과 뇌에 남아요
참고 참았던 감정이
갑자기 예기치 않게 폭발하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거예요.
그건 감정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너무 오래, 혼자서 감당했기 때문이에요.
몸으로 드러나는 두통, 소화 불량,
잠들기 어려운 밤,
그리고 자꾸 돌아가는 생각들…
그 모든 건
“이 감정을 좀 알아봐 줘”
라는 뇌의 신호일 수 있어요.
결론: 감정을 느끼는 뇌가, 살아있는 뇌예요
감정을 참는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에요.
감정을 건강하게 꺼내 놓을 수 있을 때,
우리의 뇌는 회복을 시작해요.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
다이어리에 툭 적은 한 문장,
혼자 내뱉은 “오늘은 힘들었어…”
그 모든 것들이 뇌에게는 회복의 자극이 됩니다.
감정은 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예요.
당신이 오늘 느낀 감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뇌는 그걸 기억하고 있어요.
📚 참고자료 및 출처
- Davidson, R. J., & Begley, S. (2012). The Emotional Life of Your Brain. Penguin Books.
- LeDoux, J. (1998). The Emotional Brain. Simon & Schuster.
- Sapolsky, R. M. (2004). Why Zebras Don't Get Ulcers. Holt Paperbacks.
- 김경일, 《지혜의 심리학》, 진성북스, 2021.
- 서은국,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 2014.